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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9 16:21 4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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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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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1. 채식주의자


 

━━━ 평범한 만남 ━━━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8 페이지 중에서...

언제나 나는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9 페이지 중에서...

오직 한가지 아내에게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11 페이지 중에서...

"뭐 하고 서 있는 거야?"

나는 욕실의 불을 켜려다 말고 물었다.

새벽 네시쯤 되었나, 회식에서 마신 소주 병 반 덕분에 요의와 갈증을 느기고 개어난 참이었다.

......,


━━━ 꿈 ━━━

그녀는 맨발로, 봄가을까지 입는 얇은 잠옷차림으로, 아무말도 듣지 못한 듯 우뚝 서 있었다.

마치 냉장고가 있는 자리에 내 눈에 안 보이는 사람이 - 혹은 귀신 이라도-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말로만 듣던 몽유병인가.

나는 석상처럼 굳어 있는 아내의 옆모습을 향해 다가갔다.

"왜 그래? 지금 ......"

......,

"여보!"

나는 어둠 속에 드러난 그녀의 옆얼굴을 보았다.

처음보는, 냉정하게 번쩍이는 눈으로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꿈을 꿨어"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이 몇시야, 대체"

......,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아내가 웅크리고 누워 있는 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나 혼자 있는 방 같았다.

물론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매우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든 사람의 숨소리 같지는 않았다.

손을 뻗으면 그녀의 따스한 살을 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나는 그녀를 만질 수 없었다.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싶지도 않았다.

15 페이지 중에서...

......,


━━━ 채식주의의 선택 ━━━

아내는 어젯밤과 독같은 잠옷차림으로, 부스스 헝클어진 머리를 늘어드린 채 쪼그려앉아 있었다.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희고 검은 비닐봉지들과 프라스틱 밀폐용기들이 발디딜 데 없이 부엌바닥에 널려 있었다.

샤브샤브용 쇠고기와 돼지고기 삼겹살, 커다란 우족 두 짝, 위생팩에 담긴 오징어들, 시골 장모가 얼마 전에 보낸 잘 손질된 장어,

노란 노끈에 엮인 굴비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내는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그것들을 하나씩 주워담는 중이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

"당신 제정신이야? 이걸 왜 다 버리는 거야?"

.....,

아내는 평상시와 똑같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꿈을 꿨어."

......,

봄이 올 때가지 아내는 변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풀만 먹게 되긴 했지만 나는 더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철두철미하게 변하면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5 페이지 중에서...


━━━ 무시 ━━━

"고기냄새, 당신 몸에서 고기냄새가 나."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못 봤어? 나 샤워했어. 어디서 냄새가 난다는 거야?"

그녀의 대답은 진지했다.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나는 불길한 생각을 했다.

혹시 이것이 초기증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말로만 듣던 편집증이나 망상, 신경쇠약 따위로 이어질 시초라면.

......,


━━━ 사회적 압박 ━━━

"오늘 잘해야 돼. 사장이 부부동반 모임에 과장급을 부른 건 내가 처음이야.

그만큼 날 잘 보고 있다는 거야."

32 페이지 중에서...


"골고루, 못 먹는 것 없이 먹는 사람이 건강한 거 아니겠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원만하다는 증거죠."

37 페이지 중에서...


━━━ 가족의 압박 ━━━

"자, 어서 아, 해라. 먹어."

아내는 입을 다문 채, 예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눈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로보았다.

"어서 입 벌려. 이거 싫으니? 그럼 이거."

장모는 이번에는 쇠고기 볶음을 들었다.

55 페이지 중에서...


"보고 있으려니 내 가슴이 터진다. 이 애비 말이 말 같지 않아? 먹으라면 먹어!"

나는 아내가 '죄송해요, 아버지, 하지만 못 먹겠어요'

라고 대답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죄송하지 않는 듯한 말투로 담담히 말했다.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으음......음!"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아내의 입술에 장인은 탕수육을 짓이겼다.

억센 손가락으로 두 입술을 열었으나, 악물린 이빨을 어쩌지 못했다.

마침내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장인이 한번 더 아내의 뺨을 때렸다.

60 페이지 중에서...


━━━ 결단 ━━━

아내는 몸을 우크려 현관 쪽으로 달아나는가 싶더니,

뒤돌아서서 교자상에 놓여 있던 과도를 집어들었다.

"여 영혜야."

장모의 끊어질 듯한 음성이 살벌한 정적 위에 떨리는 금을 그었다.

아이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악문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하나씩 응시하다가,

아내는 칼을 치켜 들었다.

아내의 손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흰 접시위로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무릎을 접고 주저앉은 아내에게서 칼을 뺏은 것은, 그때까지 줄곧 방관하고 앉아 있던 동서였다.

61 페이지 중에서...


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 있어.

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73 페이지 중에서...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철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77 페이지 중에서...



- [채식주의자 ], 77 페이지 중에서... -

nTalk

역사소설이 아니고야, 왠만해서는 소설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늦게나마 "채식주의자"를 선정해서 읽게 되었네요.


책을 주문한지 20일이 되어서야 도착을 하는 것을 보면,

노벨상이 큰 상이라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책을 받고 단 이틀만에 완독했네요.

그러나,

권투 링에 올라가자마자 큰 거 한방을 맞은듯한 느낌이라할까.


1편의 채식주의자를 읽어 내는 동안의 느낌은 한 마디로,

그저그런 느낌의 소설 같은 소설 정도 였습니다.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된걸까?

라는 의문만 가득찼습니다.


문자의 곧곧에 숨겨둔 조각난 퍼즐같은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편의 끝을 읽어갈 때 즘입니다.


평범한 아내, 평범한 남편,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채식주의"의 선택

이어지는 채식주의에 대한 편견? 의 문장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나 또한 '영혜'가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를 향한 남편과, 사회와, 하물며 부모까지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에

답답해진 1편 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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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채식주의자 (한강 소설ㅣ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지은이: 한강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220328

ISBN: 978893643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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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만남 ━━━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8 페이지 중에서...

언제나 나는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9 페이지 중에서...

오직 한가지 아내에게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11 페이지 중에서...

"뭐 하고 서 있는 거야?"

나는 욕실의 불을 켜려다 말고 물었다.

새벽 네시쯤 되었나, 회식에서 마신 소주 병 반 덕분에 요의와 갈증을 느기고 개어난 참이었다.

......,


━━━ 꿈 ━━━

그녀는 맨발로, 봄가을까지 입는 얇은 잠옷차림으로, 아무말도 듣지 못한 듯 우뚝 서 있었다.

마치 냉장고가 있는 자리에 내 눈에 안 보이는 사람이 - 혹은 귀신 이라도-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말로만 듣던 몽유병인가.

나는 석상처럼 굳어 있는 아내의 옆모습을 향해 다가갔다.

"왜 그래? 지금 ......"

......,

"여보!"

나는 어둠 속에 드러난 그녀의 옆얼굴을 보았다.

처음보는, 냉정하게 번쩍이는 눈으로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꿈을 꿨어"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이 몇시야, 대체"

......,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아내가 웅크리고 누워 있는 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나 혼자 있는 방 같았다.

물론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매우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든 사람의 숨소리 같지는 않았다.

손을 뻗으면 그녀의 따스한 살을 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나는 그녀를 만질 수 없었다.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싶지도 않았다.

15 페이지 중에서...

......,


━━━ 채식주의의 선택 ━━━

아내는 어젯밤과 독같은 잠옷차림으로, 부스스 헝클어진 머리를 늘어드린 채 쪼그려앉아 있었다.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희고 검은 비닐봉지들과 프라스틱 밀폐용기들이 발디딜 데 없이 부엌바닥에 널려 있었다.

샤브샤브용 쇠고기와 돼지고기 삼겹살, 커다란 우족 두 짝, 위생팩에 담긴 오징어들, 시골 장모가 얼마 전에 보낸 잘 손질된 장어,

노란 노끈에 엮인 굴비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내는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그것들을 하나씩 주워담는 중이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

"당신 제정신이야? 이걸 왜 다 버리는 거야?"

.....,

아내는 평상시와 똑같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꿈을 꿨어."

......,

봄이 올 때가지 아내는 변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풀만 먹게 되긴 했지만 나는 더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철두철미하게 변하면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5 페이지 중에서...


━━━ 무시 ━━━

"고기냄새, 당신 몸에서 고기냄새가 나."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못 봤어? 나 샤워했어. 어디서 냄새가 난다는 거야?"

그녀의 대답은 진지했다.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나는 불길한 생각을 했다.

혹시 이것이 초기증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말로만 듣던 편집증이나 망상, 신경쇠약 따위로 이어질 시초라면.

......,


━━━ 사회적 압박 ━━━

"오늘 잘해야 돼. 사장이 부부동반 모임에 과장급을 부른 건 내가 처음이야.

그만큼 날 잘 보고 있다는 거야."

32 페이지 중에서...


"골고루, 못 먹는 것 없이 먹는 사람이 건강한 거 아니겠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원만하다는 증거죠."

37 페이지 중에서...


━━━ 가족의 압박 ━━━

"자, 어서 아, 해라. 먹어."

아내는 입을 다문 채, 예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눈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로보았다.

"어서 입 벌려. 이거 싫으니? 그럼 이거."

장모는 이번에는 쇠고기 볶음을 들었다.

55 페이지 중에서...


"보고 있으려니 내 가슴이 터진다. 이 애비 말이 말 같지 않아? 먹으라면 먹어!"

나는 아내가 '죄송해요, 아버지, 하지만 못 먹겠어요'

라고 대답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죄송하지 않는 듯한 말투로 담담히 말했다.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으음......음!"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아내의 입술에 장인은 탕수육을 짓이겼다.

억센 손가락으로 두 입술을 열었으나, 악물린 이빨을 어쩌지 못했다.

마침내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장인이 한번 더 아내의 뺨을 때렸다.

60 페이지 중에서...


━━━ 결단 ━━━

아내는 몸을 우크려 현관 쪽으로 달아나는가 싶더니,

뒤돌아서서 교자상에 놓여 있던 과도를 집어들었다.

"여 영혜야."

장모의 끊어질 듯한 음성이 살벌한 정적 위에 떨리는 금을 그었다.

아이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악문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하나씩 응시하다가,

아내는 칼을 치켜 들었다.

아내의 손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흰 접시위로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무릎을 접고 주저앉은 아내에게서 칼을 뺏은 것은, 그때까지 줄곧 방관하고 앉아 있던 동서였다.

61 페이지 중에서...


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 있어.

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73 페이지 중에서...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철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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