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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5 07:46 4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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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눈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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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

두달 가까이 시간이 더 흘러 추워지기 시작한 밤.

익숙하고도 지독한 친구 같은 편두통 때문에 물 한컵을 데워 알약들을 삼키다가(담당하게) 깨달았다.

어딘가로 숨는다는 건 어차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10 페이지 중에서...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들어 간다.

11 페이지 중에서...


━━━ 안개 ━━━

움직이는 단단한 섬처럼 행인들 사이를 통과해 나아갈 때,

때로 나의 육체가 어떤 감옥처럼 느껴진다.

내가 겪어온 삶의 모든 기억들이,

그 기억들과 분리해 낼 수 없는 내 모국어와 함께 고립되고 봉인된 것처럼 느껴진다.

고립이 완고해질수록 뜻밖의 기억들이 생생해 진다.

합도하듯 무거워진다.

지난 여름 내가 도망치듯 찾아든 곳이 지구 반대편의 어떤 도시가 아니라,

결국 나의 내부 한가운데 였다.

23 페이지 중에서...


━━━ 눈 ━━━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눈을 바라본다.

버스에서라면 얼굴을 들고 한동안 차창 밖을 응시한다.

어떤 소리도 없이, 아무런 기쁜도 슬픔도 없이 성근 눈이 흩어질 때,

이윽고 수천수만의 눈송이들이 침묵하며 거리를 지워갈때,

더이상 그걸 지켜보지 않고 얼굴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53 페이지 중에서...


━━━ 진눈깨비 ━━━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59 페이지 중에서...



- [흰 ], 페이지 중에서... -

nTalk

작가의 눈은 어떤 눈일까?

누구나 동일한 눈을 통해 바라보는 대상, 풍경인데

......어쩌면 눈이 아니라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보는 것이야 다를 것이 없을테니,


우리도 가끔 마음이 울적할때는 시인이 되고 싶을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아픈 시간들이 어쩌면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겠지만,

읽어 준들 그들에게 아무런 감흥도 없겠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시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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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흰 (한강 소설ㅣ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지은이: 한강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일: 20180425

ISBN: 978895465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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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

두달 가까이 시간이 더 흘러 추워지기 시작한 밤.

익숙하고도 지독한 친구 같은 편두통 때문에 물 한컵을 데워 알약들을 삼키다가(담당하게) 깨달았다.

어딘가로 숨는다는 건 어차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10 페이지 중에서...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들어 간다.

11 페이지 중에서...


━━━ 안개 ━━━

움직이는 단단한 섬처럼 행인들 사이를 통과해 나아갈 때,

때로 나의 육체가 어떤 감옥처럼 느껴진다.

내가 겪어온 삶의 모든 기억들이,

그 기억들과 분리해 낼 수 없는 내 모국어와 함께 고립되고 봉인된 것처럼 느껴진다.

고립이 완고해질수록 뜻밖의 기억들이 생생해 진다.

합도하듯 무거워진다.

지난 여름 내가 도망치듯 찾아든 곳이 지구 반대편의 어떤 도시가 아니라,

결국 나의 내부 한가운데 였다.

23 페이지 중에서...


━━━ 눈 ━━━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눈을 바라본다.

버스에서라면 얼굴을 들고 한동안 차창 밖을 응시한다.

어떤 소리도 없이, 아무런 기쁜도 슬픔도 없이 성근 눈이 흩어질 때,

이윽고 수천수만의 눈송이들이 침묵하며 거리를 지워갈때,

더이상 그걸 지켜보지 않고 얼굴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53 페이지 중에서...


━━━ 진눈깨비 ━━━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59 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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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둥마리웅 레벨 레벨 회원등급 : 지하계 / Level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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