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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몽고반점 3중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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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 ━━━

준비해온 화구를 펼쳐놓고, PD100 캠코더를 꺼내 배터리를 확인하고,

촬영이 길어질 경우에 쓸 조명을 작업실 한켠에 세워두고,

스케치북을 한번 펼쳤다가 다시 가방에 넣고,

점퍼를 벗고, 소매까지 걷은 뒤 그는 기다렸다.

그녀가 지하철역에 도찰할 오후 세시가 가까워오자 그는 점퍼를 팔에 걸치고 구두를 신었다.

변두리라 퍽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지하철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117 페이지 중에서...


뜻밖에 처제는 지하철역의 출구에 먼저 와 있었다.

역사에서 나온 지 오래된 듯 다소 흐트러진 자세로 계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허름한 청바지에 두툼한 갈색 스웨터를 입어,

마치 혼자 겨울에서 걸어나온 사람 같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 그녀의 얼굴을,

오래 햇빛이 고인 그 몸의 윤곽을,

그는 어른 부르지 못하고 홀린듯 지켜보았다.

119 페이지 중에서...


"옷을 벗어."

우두커니 서서 창밖의 백양나무들을 보고 있는 그녀에게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후의 적요한 햇살이 흰 시트를 반짝거리게 하고 있었다.

......,

한참 만에야 그는 몽고반점으로부터 고개를 들어 그녀의 알몸을 전체적으로 보았다.

처음 모델을 하는 사람 같지 않게, 처제와 형부라는 관계를 고려한다면 더더욱 같지 않게,

처제와 형부라는 관계를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녀의 침착한 태도는 인상적인 것이었다.

......,


그는 캠코더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다리 길이를 조정했다.

그녀의 엎드린 몸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도록 위치를 잡은 뒤 팔레트와 붓을 집어들었다.

바디페인팅 작업부터 테이프에 담을 생각이었다.

먼저 그녀의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목덜미에서부터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주와 빨강의 반쯤 열린 꽃봉오리들이 어깨와 등으로 흐드러지고, 

가느다란 줄기들은 옆구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오른쪽 엉덩이의 둔덕에 이르러 자줏빛 꽃은 만개해,

샛노란 암술을 도툼하게 내밀었다.

몽고반점이 있는 왼쪽 엉덩이는 여백으로 남겼다.

122 페이지 중에서...


"다시 시작해볼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트를 향해 걸어갔다.

그 사이 햇빛이 다소 사위어, 그는 텅스텐 조명 하나를 그녀의 발치에 설치했다.

그녀는 옷을 다시 벗고 이번에는 천장을 향해 드러누웠다.

국부 조명 때문에 그녀의 상반신은 그늘져 있는데도 그는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떴다.

127 페이지 중에서...


"쉽게 지워지진 않을 거야. 몇차례 씻어내야 완전히......"

그의 말을 자르며 그녀가 말했다.

"안 지워지면 좋겠어요."

그는 잠시 망연해져, 어둠에 반쯤 덮인 그녀의 얼굴을 건너다 보았다.

130 페이지 중에서...


"왜 고기를 먹지 않는 거지? 언제나 궁금했는데, 묻지 못했어."

"대답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돼"

"아니요.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실 테니까."

"......꿈 때문에요."

"꿈?"

"꿈을 꿔서......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아요."

"무슨.....꿈을 꾼다는 거야?"

"얼굴"

"얼굴?"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 그를 향해 그녀는 낮게 웃었다.

어쩐지 음울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이해하지 못하실 거라고 했잖아요."

132 페이지 중에서...


━━━ 아내 ━━━

"작업실에 다녀올게. 아직 마무리 못한 게 있어."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지우는 깰 것 같지 않아. 아주 깊이 잠들었어.

요즘은 잠들었다 하면 아침까지 자잖아."

"......"

"듣고 있어?"

"......여보."

뜻밖에도 아내는 우는 것 같았다.

가게에 사람이 없는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아내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가고 싶으면 가세요."

잠시 후 진정한 뒤 흘러나온 것은, 한번도 아내로부터 들어본 적 없는 착잡한 음성이었다.

"나는 지금 문 닫고 들어갈게요."

전화가 끊겼다. 아무리 바빠도 먼저 전화를 끊는 법이 없는 조심스러운 성격의 아내였다.

당혹스러웠고, 느닷없는 죄의식을 느꼈으므로 그는 잠시 휴대폰을 쥔 채 망설였다.

집으로 돌아가 아내가 오기를 기다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는 곧 마음을 굳히고 시동을 걸었다.

135 페이지 중에서...


━━━ 밤의 꽃과 낮의 꽃. ━━━

그는 마스터테이프의 라벨에 검은 펜으로 적었다.

'몽고반점1 - 밤의 꽃과 낮의 꽃.'

그러자 그가 차마 시도하지 못한 것. 가능하다면 '몽고반점 2'라는 제목이 붙여질 이미지,

실은 그것만이 전부였던 이미지가 어떤 그리운 사람의 얼굴처럼 절실하게 그의 눈을 가렸다.

......,

그는 마스터테이프를 손아귀에 넣은 채 만지작거리다가 생각했다.

만일 처제와 함께 찍을 남자를 골라야 한다면 그 자신은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주름진 배와 튀어나온 옆구리살, 무너지는 엉덩이와 허벅지의 선을 알고 있었다.

......,

누구에게 그녀와 섹스하게 할 것인가.

이것은 애로영화 따위가 아니므로, 섹스하는 시늉만 잡어서는 안 된다.

정말로 삽입하도록 해, 그 교합된 성기를 담아낼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누가 그것을 승낙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처제가 그것을 받아들이겠는가?

139 페이지 중에서...

- [채식주의자 ], 178 페이지 중에서... -

nTalk

이 편을 읽으면서 내내, 영혜의 형부가 그녀를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과정이 그녀가 가진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 작업은 영혜를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형부는 점점 더 자신의 욕망에 매몰되고 있었고, 

특히 영혜와의 관계를 상상하는 순간에 자신을 먼저 떠올린 부분이 이를 잘 보여주었다.


형부의 행동으로 인해 영혜가 잠시나마 위로를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치유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있어 '욕망'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인간은 욕망을 통해 진화해왔다'는 말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 모든 진화의 순간에 욕망이 긍정적인 역할만을 했을까라는 질문에는 쉽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욕망과 이성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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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채식주의자 (한강 소설ㅣ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지은이: 한강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220328

ISBN: 978893643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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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 ━━━

준비해온 화구를 펼쳐놓고, PD100 캠코더를 꺼내 배터리를 확인하고,

촬영이 길어질 경우에 쓸 조명을 작업실 한켠에 세워두고,

스케치북을 한번 펼쳤다가 다시 가방에 넣고,

점퍼를 벗고, 소매까지 걷은 뒤 그는 기다렸다.

그녀가 지하철역에 도찰할 오후 세시가 가까워오자 그는 점퍼를 팔에 걸치고 구두를 신었다.

변두리라 퍽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지하철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117 페이지 중에서...


뜻밖에 처제는 지하철역의 출구에 먼저 와 있었다.

역사에서 나온 지 오래된 듯 다소 흐트러진 자세로 계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허름한 청바지에 두툼한 갈색 스웨터를 입어,

마치 혼자 겨울에서 걸어나온 사람 같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 그녀의 얼굴을,

오래 햇빛이 고인 그 몸의 윤곽을,

그는 어른 부르지 못하고 홀린듯 지켜보았다.

119 페이지 중에서...


"옷을 벗어."

우두커니 서서 창밖의 백양나무들을 보고 있는 그녀에게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후의 적요한 햇살이 흰 시트를 반짝거리게 하고 있었다.

......,

한참 만에야 그는 몽고반점으로부터 고개를 들어 그녀의 알몸을 전체적으로 보았다.

처음 모델을 하는 사람 같지 않게, 처제와 형부라는 관계를 고려한다면 더더욱 같지 않게,

처제와 형부라는 관계를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녀의 침착한 태도는 인상적인 것이었다.

......,


그는 캠코더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다리 길이를 조정했다.

그녀의 엎드린 몸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도록 위치를 잡은 뒤 팔레트와 붓을 집어들었다.

바디페인팅 작업부터 테이프에 담을 생각이었다.

먼저 그녀의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목덜미에서부터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주와 빨강의 반쯤 열린 꽃봉오리들이 어깨와 등으로 흐드러지고, 

가느다란 줄기들은 옆구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오른쪽 엉덩이의 둔덕에 이르러 자줏빛 꽃은 만개해,

샛노란 암술을 도툼하게 내밀었다.

몽고반점이 있는 왼쪽 엉덩이는 여백으로 남겼다.

122 페이지 중에서...


"다시 시작해볼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트를 향해 걸어갔다.

그 사이 햇빛이 다소 사위어, 그는 텅스텐 조명 하나를 그녀의 발치에 설치했다.

그녀는 옷을 다시 벗고 이번에는 천장을 향해 드러누웠다.

국부 조명 때문에 그녀의 상반신은 그늘져 있는데도 그는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떴다.

127 페이지 중에서...


"쉽게 지워지진 않을 거야. 몇차례 씻어내야 완전히......"

그의 말을 자르며 그녀가 말했다.

"안 지워지면 좋겠어요."

그는 잠시 망연해져, 어둠에 반쯤 덮인 그녀의 얼굴을 건너다 보았다.

130 페이지 중에서...


"왜 고기를 먹지 않는 거지? 언제나 궁금했는데, 묻지 못했어."

"대답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돼"

"아니요.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실 테니까."

"......꿈 때문에요."

"꿈?"

"꿈을 꿔서......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아요."

"무슨.....꿈을 꾼다는 거야?"

"얼굴"

"얼굴?"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 그를 향해 그녀는 낮게 웃었다.

어쩐지 음울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이해하지 못하실 거라고 했잖아요."

132 페이지 중에서...


━━━ 아내 ━━━

"작업실에 다녀올게. 아직 마무리 못한 게 있어."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지우는 깰 것 같지 않아. 아주 깊이 잠들었어.

요즘은 잠들었다 하면 아침까지 자잖아."

"......"

"듣고 있어?"

"......여보."

뜻밖에도 아내는 우는 것 같았다.

가게에 사람이 없는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아내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가고 싶으면 가세요."

잠시 후 진정한 뒤 흘러나온 것은, 한번도 아내로부터 들어본 적 없는 착잡한 음성이었다.

"나는 지금 문 닫고 들어갈게요."

전화가 끊겼다. 아무리 바빠도 먼저 전화를 끊는 법이 없는 조심스러운 성격의 아내였다.

당혹스러웠고, 느닷없는 죄의식을 느꼈으므로 그는 잠시 휴대폰을 쥔 채 망설였다.

집으로 돌아가 아내가 오기를 기다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는 곧 마음을 굳히고 시동을 걸었다.

135 페이지 중에서...


━━━ 밤의 꽃과 낮의 꽃. ━━━

그는 마스터테이프의 라벨에 검은 펜으로 적었다.

'몽고반점1 - 밤의 꽃과 낮의 꽃.'

그러자 그가 차마 시도하지 못한 것. 가능하다면 '몽고반점 2'라는 제목이 붙여질 이미지,

실은 그것만이 전부였던 이미지가 어떤 그리운 사람의 얼굴처럼 절실하게 그의 눈을 가렸다.

......,

그는 마스터테이프를 손아귀에 넣은 채 만지작거리다가 생각했다.

만일 처제와 함께 찍을 남자를 골라야 한다면 그 자신은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주름진 배와 튀어나온 옆구리살, 무너지는 엉덩이와 허벅지의 선을 알고 있었다.

......,

누구에게 그녀와 섹스하게 할 것인가.

이것은 애로영화 따위가 아니므로, 섹스하는 시늉만 잡어서는 안 된다.

정말로 삽입하도록 해, 그 교합된 성기를 담아낼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누가 그것을 승낙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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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주의자 ], 178 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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